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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月及) [연재 종료]

2017년 10월 월급 (月及) : 레몬돌이

by Alex Yu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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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Green

어느 평범한 출근 길 이였다.

 

그녀는 새로 먹어본 젤리가 맛있다고 “왠지... 먹으면 비타민이 생성되는느낌?”

이라며 사진을 한 장 보내왔는데,

레몬향이 가득 퍼지는 비타민C 분말을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만든 젤리였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젤리의 모양도 귀여운데다가 ‘레몬돌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이걸 보고 문득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말도 안되는 소설을 작성했는데,

아래가 그 원문이다.

 

-

 

1. 난 비타민C다.

탱글탱글한 레몬속에서 거주하는 나는 작은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길러 준 농장 어르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춤과 노래를 불러주는 것 이였다.

하지만 비타민C의 삶이란 인간에게 먹혀 비참하게 끝날 것 이라는 결말을 익히 들어왔기에 그저 작은 소망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2.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 제약회사의 실험실에 갇혀있었다.

나의 소망을 그들이 들었을까?

그들은 내게 육체를 만들어 준다 하였고, 같은 소망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실험을 받고 있었다.

 

3. 젤리 형태의 육체가 생겼다.

제약회사의 실장님 말로는 시간이 지나면 팔과 다리가 자라고 그 후에는,

춤과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눈 모양은 ㅋ 모양이지만 앞은 조금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 동료들도 오늘이 오기까지 함께 고통을 견뎌왔기에 전우애 라는 감정도 생겼다.

그렇다, 우리는 죽을때도 함께! 라는 끈끈한 우애로 똘똘뭉친 것이다.

 

4. 우리의 코드네임은 '레몬돌이'

이전 거주지 '레몬'의 이름과, 비록 중성화 수술을 거치긴 했지만 씩씩하게 자라라고

'돌이'를 붙여주었다.

새로운 주인이 생기면 내게 코드네임 말고 어떤 이름을 붙여줄지,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팔과 다리가 약간 자란 느낌이지만 아직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진 않는다.

 

5. 노란 지퍼 백 밖에서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이 곳을 벗어났다는 확인음인 편의점 특유의 '삑'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노란 지퍼 백의 지붕이 열렸다.

오랫만에 만나는 푸르른 하늘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 보는 귀여운 소녀.

비록 아직 입과 성대는 미완성 상태지만 '레몬돌이' 전우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우리는 레몬돌이! 귀엽게 봐주세용! 데헷!!'

 

6. '레몬돌이 No.705'는 머리부터 뜯긴 채 사망하였다.

그의 유언 그리고 외마디 비명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나는 아직 지퍼 백에 갇혀있고, 살아있다.

확률 상 다음은 나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결국은 비타민C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동안 품어왔던 꿈과 희망을 한번에 버리기엔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7. 지퍼 백 안으로 소녀의 여린 손가락이 들어왔고, 내 머리를 살포시 잡아당겼다.

나의 전우들은 비록 움직일 수 없는 육체지만,

필사적으로 젤리 특유의 끈적함을 발휘해 붙잡아 주었으나 역 부족 이였다.

허리부터 잘려나가 머리만 남은

'레몬돌이 No.147' 내 마지막 이름.

소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먹으면 비타민이 생성되는느낌?"

 

-

 

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출근을 하니,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출근 시간이 상당히 짧아진 느낌이었다.

 

언제 또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하루가 즐거워지는 출근 길 이였다.

 

사진 : Green / : Alex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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