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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月及) [연재 종료]

2018년 11월 월급 (月及) : 사물의 인격화

by Alex Yu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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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을 년식에 비해 참 깔끔하게 잘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진짜 어렸을 때는 내가 가진 전자제품에

정식 풀 네임을 마음 속으로 외치며 오늘도 달려보자고 다짐을 하고는 했다.

(예를 들면 다들 뒷 자리인 E900이라고 불리는 모델을 꼭MZ-E900 이라고 부름)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기계를 충전할 땐 ‘오늘도 수고했다.’ 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마음가짐 같은 것이 티가 났는지,

내가 쓰는 전자제품들을 빌려달라는 이가 많지 않았고,

막상 빌려가도 대체로 큰 이상 없이 잘 돌아왔다.

아무래도 부담이 걸렸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고가인 휴대폰 만큼은

전투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예전의 인격화 수준의 마음가짐은 거의 없어졌다.

 

아니, 인격화를 했다가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관두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 싶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만큼 전투적으로 쓰는 제품 군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카메라다.

 

카메라는 휴대폰과 달리, 생각보다 상당히 튼튼하며, 타인에게 빌려주기 어렵지 않고,

상당한 고가 제품이 많아 현금화 시키기가 쉽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첫 모델은 여기저기 막 빌려주는 바람에

지금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팔지도 못하고 박스 속에 모셔져 있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기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후 장비 기변병에 걸려 여럿 카메라 제품들이 내 손을 거쳐 중고거래로 팔려 나갔고,

최근 심경의 변화가 생겨, 메인 카메라였던ILCE-7K도 며칠 전에 중고로 판매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중고로 판매를 할 때마다, 썩 좋지 않은 감정이 든다.

 

사물에 대한 인격화가 어렸을 때부터 자리를 잡아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며칠 뒤면 메인 카메라가 곧 내 손에 도착할 예정이다.

 

위에도 적어놓았지만, 최근 심경의 변화가 생겨 이번에는 어렸을 때처럼

인격화를 오랜만에 시켜보려 한다.

 

새 상품을 사서 좋은 기분이 아닌, 전혀 다른 두근거리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번 월급에는 곧 들어올 메인 카메라의 할아버지뻘 되는 모델로 찍은

10년 전11월의 사진을 올려본다.

 

10년 전의 사진을 넘어서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사진 : Alex Yu / : Alex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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