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딱 그때까지 살았던 동네가 있었다.
받아쓰기가 익숙해지고
교회와 성당의 차이를 잘 모르며
버스의 벨을 누르기엔 아직 두렵고 어색하지만,
학교가는 길은 어느 누구보다 빠른 골목길을 알고
산타의 진실을 찾아 헤매이던 초등학교 저학년의 끝.
환상과 현실이 겹쳐가던 그 시절.
열살의 기준으로 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곳으로
모든 시간을 멈춰둔 채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등교 길, 새로운 친구들…
그렇게 흐르는 세월에 점차 옛 동네의 기억은 사라지고
새로운 기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무렵,
옛 동네가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걸 느낀 시점은
대중교통이 익숙 할 나이인 고등학교때 즈음 이었다.
‘기회가 되면 꼭 가봐야지…’ 라고
가슴 한켠에 담아두고 지내왔지만,
어떠한 두려움으로 인해 25년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만 서성이다 돌아왔다.
‘그때의 친구들은 그대로 살고 있을까?’
‘공원, 학교, 교회, 시장은 그대로 있겠지?’
‘집 사이 사이의 골목길은 그대로 있을까?’
정도의 의심은 곧…
‘친구들의 이름과 집이 기억나지 않아...’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겼네, 내가 살던 곳도 없어졌나?’
‘그 골목길들은 과연 진짜 였을까?’
라는 두려움으로 바뀌어 커져갔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 때의 현실은 환상에 가까워졌고,
나는 그 환상 속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는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환상 속 추억…
하지만 언젠가는 방문 할 ‘기회’는 항상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 ‘기회’라는 것은 항상 불현듯이 찾아온다.
날씨가 선선했던 어느 주말…
옛 동네 버스정류장을 지나 몇 정거장 더 가면 보이는 야구장에서
느즈막히 야구경기가 끝나고, 알 수 없는 기분이 살짝 들었던 그 날.
조금 걷고싶은 마음으로 발길따라 가다보니
어느새 크게 확장 된 25년 전의 교회 앞에 서있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확장된 교회만큼 크게 들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을꺼야…
그저 평범한 주택가라 슈퍼하나 찾기도 어려울 지 몰라…
하지만 어떻게 변했는지, 내 기억이 어디까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지금 아니면 다시는 안올 것이라는 걸 아는 듯이…
‘그래, 조금은 지루할 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더듬어 그저 걸어 나갔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큰 공원,
내가 살던 작은 집, 초등학생 정도 되야 지나갈 수 있었던 골목들은
전부 커다란 아파트와 상가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나마 큼직큼직했던 길 만이 깨끗하게 포장되어 내 아련한 기억들을
새롭게 덮어주고 있었다.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의 오래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아쉬우면서도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25년 전, 이사를 가던 그 날과 똑같이 등교 길을 따라
내 모교를 들러 큰 길로 나가려 하던 그 때…
모교 앞 언제나 활기로 넘쳐났던 문구점이 내 넋을 빼앗았다.
그 광경은 마치 레드와 그린의 반복된 컬러라인으로 잘 포장 된
25년간 뜯지도 않고 그저 방치해 둔 잊어버린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느낌이었다.
굳게 닫힌 철문은 마치,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뜯어보고 싶지않은,
그저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추억의 현실.
너무나도 또렷한 광경 앞에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반가움, 그리움, 아쉬움, 기쁘면서도 슬픈…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지나다녔고,
어느새 내 눈시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냥… 울어도 되요.’
내 추억의 시간엔 존재하지 않았을 작은 아이의 작은 속삭임은
복잡했던 환상 속의 그리움과 막연했던 두려움의 시간을
깨끗하게 씻어내어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고,
이 오래되고 심기가 불편했던 선물은
또 다시 새로운 형태의 선물로써 내 앞에 서있었다.
‘안녕, 이제 다시 찾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 잘 있어.’
사진 : Alex Yu / 글 : Alex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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