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hthings의 유민호 작가와 ‘부모가 된 친구들’에 관하여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어쩌고 해도
어찌 되었건 그들은 세상에 자신의DNA를 남겼다 라고.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본인의DNA 절반이 담겨있는 자식을 완성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유산인가?
미래가 고스란히 담긴 자손이라는 유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자 도리이며
그러다가 보면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정리가 될 것이다.
아직 미혼인 내 입장에서는 정리를 당하는 입장이므로 그리 유쾌하진 않지만
생물학적으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므로 어느 정도는 감수하는 편이다.
그리고 부모가 된 친구들의 현실에 내가 존재하고 있긴 하구나 라는 위로감도 든다.
마찬가지로 내 입장에서도 인간관계가 원하던 원치 않던 정리가 된다.
지리상으로 상당히 멀리 살고 있는 친구이고
가족을 챙기기 위해 작업활동을 중단한 상태지만
그래도 현재의 끈을 놓지 않으려 따스한 전화 한 통이 좋은 그런 친구들.
내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아주 가까워졌지만
가정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식 과자 사주러 슈퍼 나갈 때
잠깐 짬을 내서 나에게 전화 걸어주는 몇 년째 아직 얼굴 못 본 친구.
배우자에게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허락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만나자고 해놓고 지하철 다섯 정거장의 간격이 십 수년 우정의 간격보다 너무 멀어서
그의 미래에는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과거와 현재를 버리고 인간관계 깔끔히 정리 된 친구.
이렇게 자식을 낳은 친구들을 나열해보니 나는 현재에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적으로 자신의DNA를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유산이라면
이걸 못하는 경우에는 무엇을 남길 것 인가.
꼭 무엇을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죽는 그 순간에 너무나도 허무할 것 같다.
그냥 미래 없이 죽는 그 순간까지 현재에만 살았구나 라는 허무함.
소설 ‘링’에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사다코는 죽는 그 순간까지 염사를 통해 비디오를 만들어 놓았고
비디오를 본 사람 중 배란기의 여성인 경우 사다코를 낳게 되며
남성인 경우 비디오를 대량복제 하던가 잡지 및 신문 기사화 시키던가
퍼뜨릴 만한 매체를 만들지 못하면 일주일 뒤에 죽는다.
물론 영화로 본 사람들은 그저TV에서 기어 나오는 귀신으로 밖에 모르겠지만
소설 속 사다코는 우물 속에 갇힌 상태에서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사다코 까지는 아니지만 어떠한 유산을 만들고 싶다.
그저 현실만 살다가 죽기에는 너무 허무하다.
좋은 이성을 만나 생물학적으로 자손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긴 하지만
그래도, 자식 이외에 뭔가 하나 만들고 싶다.
이것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미래에 대한 꿈이다.
사진 : Alex Yu / 글 : Alex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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