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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퇴사 스토리 4화 - 대형 마트

by Alex Yu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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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부터 2023년까지 다년간 입사와 퇴사를 겪은 경험담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은 부디 필자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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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04 : 대형 마트

근무 기간 : 고3 겨울방학 기간



무서울 것 없는 고3의 겨울 방학.

수능도 끝났고 대학 갈 생각이 없었던 나는 바로 일자리를 구했다.

지방 점포만 운영하던 이 대형 마트가 드디어 테스트를 마쳤는지 때마침 서울로 입성한다고 인원을 다수 모집하였다.

어떻게 보면 아르바이트라는 신분이긴 했지만 첫 직장 같은 곳이랄까? 그런 기분이 드는 곳이다.

지금도 몸에 배어있는 일주일간의, 약간은 혹독했던 서비스 교육과, 이름이 박힌 직원 카드라는 것도 목에 걸고 다니고, 직원 식당은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럽게 제공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진급 아닌 진급도 경험했고 나름 인정받으며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오픈 멤버로 방문 고객에게 영수증을 확인하여 사은품을 나누어주고 사은품이 부족하면 창고에서 날라서 행사장으로 옮겨주는 일주일짜리 근무였는데, 일주일 후 원하는 파트나 근무조건에 맞는 파트로 배정해 준다고 하여 베이커리 파트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곳의 베이커리 파트에서 근무하는 정직원 모두 다행히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고, 튀김기를 다루던 누나의 결혼으로 인한 퇴사 때문에 인력이 없었던 상황에서 내게 제빵 기술을 알려주었던 곳이다.

원래 아르바이트는 백 야드에서 철판만 신나게 닦고 퇴근하면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크로켓을 튀기고 있고, 식빵 둥글리기를 하고 있었으며, 크루아상을 말고 있고, 쿠키를 굽고 있었다.

물론 급여 인상은 없었다.

결국 대학 진학 및 군 입대로 인해 퇴사하였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01

튀김기 담당일 때 일어난 일이다.

보통 아침에 출근해서 깨끗한 기름을 한가득 부어놓고 온도를 올린 후 찹쌀 도넛을 가장 먼저 튀긴다.

찹쌀 도넛을 먼저 튀기는 이유는 발효 시간이 필요 없고, 잘못 튀겨서 내용물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적고, 튀김가루 등의 부산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아침마다 찹쌀 도넛을 50개씩 튀기는데, 내가 근무하던 이 대형 마트는 1+1 행사의 선두주자 같은 곳이다.

그렇다, 찹쌀 도넛이 1+1 행사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것도 당일 아침에 파트장이 허겁지겁 알려주셨다.

튀김기의 평수는 정해져 있고, 찹쌀 도넛의 완성 시간도 정해져 있고, 엄청 난감한 상황.

그리고 찹쌀 도넛이라는 것이 모양이 둥글둥글해서 위, 아래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도구로 계속 굴려가면서 튀기지 않으면 서로 들러붙거나 색상이 고르게 튀겨지지 않는다.

파트장이 난감해 하시던 때에… 뭐 방법이 있나?

50개 들어가면 딱 알맞은 튀김기에 냅다 100개를 다 굴려 넣고, 혼신의 힘을 다해 도구로 굴려주었다.

들러붙은 찹쌀 도넛 딱 2쌍, 100개 중에 4개 실패하고 무사히 완성 시켜서 내보냈다.

행사 물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퇴근할 때까지 칭찬을 받았다.

군대 전역해서 다시 여기로 오면 제빵 자격증 따게 만들어 주겠다는 파트장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날 이후 식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02

나와 파트 이동을 같이했던 몇 살 많은 어떤 분 있었는데, 그 분은 퇴사하는 그날까지 백 야드에서 철판을 닦았다.

찹쌀 도넛 사건 이후로 빵을 만지게 된 나로서는 근무 도중에 철판만 닦는 그 분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데, 그 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시샘과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면, 싸움이 날 법한 상황이라는 것을 사회생활하며 한참 나중에 알았지만, 이 분과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한참 지나 생각해 보니, 분명 파트장은 그 분에게도 똑같이 제빵 쪽으로 권유를 했을 텐데, 본인이 거절한 것 같다.

하긴… 튀김기 만지게 되면서 출근시간이 1시간 앞당겨지는 근무시간 변화도 있었고, 대형 오븐에 팔이 데인 자국을 보면 거절할 만한 것 같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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